피 속에서 핀 피안화 14

제 10화 : 재미와 공포

***** 부모 방까지 쭉 이어진 피를 따라갔다. 바닥에 떨어진 원 모양의 핏자국은 내 신발에 찍혀 발자국 모양으로 바뀌었다. 아아. 다음엔 어디를 찌를까. 여자애는 어떻게 피하려나. 들뜬 마음을 갖고 방 앞에 섰다. 분명히 부모 방의 문은 내가 열어놨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굳게 닫힌 방문이 보였다. 이 녀석 제법 하잖아? 소리 없이 문을 닫을 걸까 아니면 내가 소리치는 사이 닫은 걸까. 둘 중 아무래도 좋았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 여자애한테는 목숨이 걸린 일이겠지만. 문을 잠글 시간적 여유는 없었나 보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손쉽게 문이 열렸다. 불이 꺼져서 방안은 어두웠다. 여자애가 죽음이란 공포를 맛보아서 그런지 방안은 조용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갔겠지. 하지..

제 9화 : 깨달음

어두워서 잘은 안 보이지만 지금 거실은 폭탄이 떨어진 듯한 모양새일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가구 파편이 길을 막거나 내 다리를 긁어 상처를 냈다. 성냥에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소금물 통을 들고 있어서 손이 부족했다. 오른손을 쓰려면 통을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무의식중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왼손만 멀쩡했었더라도…! 문을 뜯고 나온 여자 귀신이 제자리에 서서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짓에 물건들이 다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앞, 뒤, 양옆, 머리 위쪽. 사방에서 물건들이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날아오는 방향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벽 쪽으로 향했다. 맞기 바로 직전, 어둠 속에서 형태가 보일 때 간신히 피하는 정도였다. 역시 날아오는 것을 모조리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묵직한 물건이..

제 8화 : 도망

“거기 있었구나?” 여자 귀신의 섬뜩한 목소리. 다락방에서의 일이 아직도 화가 났는지 말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창문마다 배회하면서 나를 찾고 있었다는 소년 귀신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2층에서 베란다를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창문을 본 적이 없었다. 다락방이 조용해진 이후부터 창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내가 창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여자 귀신이 벽을 통과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두 눈은 단 한 번의 깜박임도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귀신이라 형체가 없을 텐데도 여자 귀신이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목선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몸 ..

제 7화 : 어둠

던진 팥은 귀신의 화만 돋운 것 같았다. 잠깐 뒤를 돌아보자 나를 잡기 위해 빠르게 날아오는 여자 귀신의 모습이 보였다. 분노한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마른침을 삼켰다. 잡히면 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아니,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자 다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뒤쪽에서 용서 못 한다는 여자 귀신의 고함이 들렸다. 달리던 도중 손전등이 몇 번 깜빡거리더니 꺼져버린다. 전원 버튼을 여러 번 눌러보았지만 켜지지 않는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했다. 그 배터리로는 오늘 하루 동안은 충분히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뒤에 귀신이 따라오고 있다. 방향을 꺾어 왼쪽 대각선을 향해 달렸다. 벽을 따라가면 그 상자가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어둠..

제 6화 : 발각

다락방에 다다르자 꺼두었던 손전등을 켜고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텅 비어있으리라 생각했던 다락방에는 의외로 잡동사니들이 많았다. 대체 이런 고물들은 왜 모아두고 있는 걸까. 그래도 쌓여있는 물건들 뒤에 숨어있으면 여자 귀신에게 쉽게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물건이 많은 만큼 거미줄이나 먼지도 많아 숨쉬기는 조금 힘들겠지만. 비가 와서 습기가 찼기 때문인지 매캐한 먼지 냄새와 함께 시큼한 곰팡냄새가 났다. 바로 위가 지붕이라 그런지 다락방은 집안 다른 곳과 달리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했다. 내 발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 다행이지만, 역으로 귀신이 다가오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걱정되었다. 빨리 찾고 다락방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여기에도 꽃이 있는 거야?”“그건 나도 몰라. 내가 알고..

제 5화 : 의심

문 앞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어두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여자 귀신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조심한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다가올 때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없었다면, 난 이미 잡혔을지도 모른다. 번개가 한 번 치고 귀신이 없단 걸 확인한 후에, 복도로 나왔다. 방 바로 앞에 있는 베란다 쪽을 확인했다. 그 여자 귀신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복도는 뻥 뚫려 있어서 내가 있는 걸 바로 들켰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만약 열렸다면 피안화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했을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팔다리 한두 개쯤 부서지는 게 나을 테니까. 베란다 창문 너머로 집을 삼킬 듯 쏟아지는 폭우가 보인다. 베란다 중앙에 서 있는 흐릿한 무언가..

소금물, 팥, 부적 설정

* [주의] 스토리를 위한 설정일 뿐, 실제로는 효과가 없거나 다를 수 있습니다. *  1. 소금물소금물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귀신의 눈을 피할 수 있다.효과는 최대 5분 정도 유지되며, 오래 머금고 있을수록 효과는 점점 떨어진다.자신의 모습만 감추는 것이므로, 숨소리나 발걸음까지는 감추지 못한다.  2. 팥팥을 한 움큼 쥐고 귀신에게 던지면, 귀신을 쫓아내거나 잠시 멈출 수 있다.효과는 1회용으로, 한 번 던진 팥을 주워 담아 다시 던져도 효과가 없다.잡귀의 경우 쫓아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악귀는 잠시 멈추는 게 끝이다. 귀신의 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효과는 반감된다.악귀한테는 목숨이 위태로울 때만 사용해야 한다. 귀신을 공격하는 것이므로, 귀신이 분노하여 이후의 공격이 거세질 수 있다.팥이 물에 젖으..

주인공과 살인마의 생일이 상징하는 것

주인공의 생일은 2월 19일로, 24절기 중 하나인 우수(雨水)에 해당되며,살인마의 생일은 11월 22일로, 24절기 중 하나인 소설(小雪)에 해당된다. * 우수(雨水):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니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小雪):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한다. (중략)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첫추위가 온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즉, 집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겨울에 비유된 것이다. 살인마가 집에 와서 남매가 죽고 저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나,살인마의 환생인 주인공이 집에 다시 와서 저주를 풀고 끝을 맺었음을 의미한다.

주인공과 남매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

주인공의 이름은 '이하루'이고, 남매의 이름은 각각 '신하제'와 '신라온'이다. * 하제내일의 순우리말로 추정되는 말이다.* 라온'라온'은 '랍다'의 활용형으로서 '즐거운'의 의미를 나타낸다.- 국립국어원 - 남매의 이름을 합치면 즐거운 내일이라는 의미로,남매의 미래가 항상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며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여기에 주인공의 이름을 껴서 풀이하면 이렇게 된다.오늘 하루만을 바라보던 자(주인공=살인마)는 미래를 꿈꾸는 자(소년)를 죽이고 삶의 즐거움(소녀)마저 앗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