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속에서 핀 피안화/소설

제 2화 : 처녀귀신

밤꿈 (Night Dream) 2025. 2. 19. 20:00

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의 내부는 말끔했던 건물 외부하고는 조금 달랐다. 방치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증명하듯 발자국 없이 뿌옇게 쌓여있었고, 모서리나 가구 군데군데에는 거미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해져 오는 살해당한 남매 이야기가 사실인 듯, 먼지로 인해 매캐한 냄새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외관과는 달리 생각보다 넓은 내부에 감탄했다. 나는 현관의 문을 열어 둔 채로 손전등 불빛을 이리저리 움직여 집안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현관의 바로 앞은 거실인 듯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현관 바로 앞에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액자가 깨져있었다. 사진이 오래되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아마 소문 속의 그 남매와 부모의 사진일 것이다. 그 액자를 발견한 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거실 바로 앞쪽으로 계단이 보인다. 위로 가는 계단이 있고, 아래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걸 봐선 지하실도 있는 모양이었다. 100년 전에 다락방에 지하실이 있는 걸 봐선 그 남매의 집안은 꽤 잘살았나 보다. 

 

나랑 엄청나게 비교되네…. 이런 신세 한탄을 하며, 나는 점점 더 집안 깊숙이 들어갔다. 거실의 반대편 끝까지 갔을 때였다. 

 

쾅! 

 

갑자기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은 현관 방향이었다. 나는 서둘러 손전등 불빛을 현관 쪽으로 비추었다. 분명 열어두고 들어왔을 현관문이 닫혀있었다. 바람이 불어 닫힌 건가 싶어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며 돌아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철컥, 철컥-. 

 

녹슨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내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분명 문고리는 돌아갔었는데?! 싸한 느낌과 함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문고리를 잡은 손은 땀으로 인해 계속 미끄러졌다. 

 

그 순간. 소름이 쫙 끼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꺄하하! 왔다! 드디어 왔어! 오랫동안 기다렸단다. 꼬마야!” 

 

사람이라면 낼 수 없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내 뒤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건 확실했다. 숨을 몇 번 가다듬고 뒤를 확 돌아봤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 소복을 입은 여자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자료에서 본 전형적인 처녀 귀신의 모습이었다. 그 귀신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말 듯 한 채로 소름 끼치게 웃고 있었다. 눈은 반달처럼 휘어 웃고 있었지만, 그 속의 빨간 눈동자는 광기에 차올라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손전등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손전등이 내 발 앞으로 굴러왔다. 

 

도망가야 한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발바닥은 땅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내 앞으로 그 귀신이 다가온다. 

 

“30년 넘게 이 순간을 기다렸어. 그동안 인간이 들어온 적이 없었거든. 너만 죽이면, 드디어 나도 저승으로 가는 거야!” 

 

뭐가 그렇게 신이 난 것인지 그 귀신은 한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는 한참을 웃어댔다. 귀신의 웃음소리를 듣자 극도의 공포로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간다. 움직여. 제발. 다리야 움직여라. 

 

내 몸이 약간 움직이자 갑자기 귀신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없어진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바라본다. 흡사 벌레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자. 어디 한 번 발버둥 쳐봐. 내 마지막을 즐겁게 해달라고.” 

 

귀신이 빠르게 내 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굳어있던 다리가 움직인다. 재빨리 발 앞에 놓여있는 손전등을 줍고 냅다 달렸다. 

 

현관으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일단은 어디에라도 숨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침실로 보이는 방이 계단 바로 앞에 하나와 왼쪽 옆에 두 개가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갈지 망설임도 잠시. 귀신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왼쪽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침대 아래에 숨었다. 

 

서둘러 손전등의 불을 껐다. 갑자기 달리는 바람에 숨이 찼지만, 침대 아래로 허공에 있는 귀신의 발이 보이자 숨을 억지로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숨을 거면 들키지 않게 잘 숨어 보렴. 나를 좀 더 재미있게 해줘. 어차피 넌 이 집에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 

 

방 밖으로 나가 2층 복도를 몇 번 배회하던 귀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다른 층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난 참고 있던 숨을 쉬었다. 갑자기 산소가 들어오자 폐가 놀라서 경련하는 건지 가슴 쪽이 아파왔다. 

 

무서웠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침대에서 나왔다. 2층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옆에 있던 창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었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창문 중앙의 잠금장치가 뭉개져 있었다. 이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귀신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아마 밖으로 통하는 문이란 문은 전부 다 이런 상태겠지. 

 

방금 그 귀신은 누구일까. 분명히 이 집에서 살인마에게 죽은 건 어린 남매라고 했다. 저 귀신은 아무리 봐도 성인 여성이었다. 귀신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고 생전 죽은 모습을 유지한다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이 집에서 실종되었다던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인 건가. 아니 왜 갑자기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는 건데? 30년 만에 저승에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집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저 귀신에게 죽은 건가? 

 

우르릉- 쾅!! 

 

복잡해진 생각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들린 천둥소리에 비명을 지를뻔했다. 몇 번 번쩍거리던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퍼붓는다. 굵은 빗줄기는 창문을 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따금 천둥·번개는 큰 굉음을 내며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온 집안을 하얗게 비추었다. 

 

귀신에게 쫓기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에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분위기까지 더해지자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비가 오면 귀신의 음기는 강해진다고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집 안의 피비린내가 강해지기 시작한다. 코를 타고 들어오는 역겨운 냄새에 반사적으로 코를 막았다. 손전등의 불빛을 약하게 한 채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내가 숨은 침대 바로 옆, 방 귀퉁이. 벽과 침대 사이에 핏자국이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먼지에 발자국 하나 없었던 것을 보면 분명 오래된 핏자국일 터였다. 그러나 그 핏자국은 흘러나온 지 얼마 안 된 듯한 모양새였다. 

 

무엇인가 이상했지만, 누군가의 피라는 생각을 하자 생리적 불쾌감에 몇 번 헛구역질 했다. 더는 이 방에 있기 싫어 방 밖으로 조심스레 나왔다. 문 앞에 조용히 쭈그려 앉아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귀신은 아직 다른 층에 있는 것 같았다. 

 

귀신이 방을 나간 뒤, 소리는 방 오른쪽에 있는 계단에서 사라졌다. 일단은 계단 쪽으로는 가지 말자. 그러다 보니 남은 곳은 왼쪽에 있는 또 다른 방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에서 손전등을 켜면 그 불빛을 귀신이 보고 달려올까 봐 두려웠다. 앞에 있는 깜깜한 복도도 무서웠지만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 여자 귀신이 훨씬 무서웠다. 결국, 손전등 불빛 없이 벽을 더듬어가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딱하나 하늘에 감사한 것이 있다면, 가끔 치는 번개가 앞을 밝혀준다는 것일까나. 

 

바로 옆방까지는 몇 미터 안 될 짧은 거리였을 터였다. 이 순간만큼은 그 짧은 거리가 몇백 미터 같았다. 귀신이 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신경이 곤두섰다. 내 모든 감각기관은 귀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하느님, 부처님, 조상신…. 아는 신들의 이름을 전부 떠올렸다. 지금까지 믿지도 않던 신들에게 빌었다. 이 복도를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내 기도가 통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옆 방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그때까지는 그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